(미완성)




비행공포 - 에리카 종



여성에 의해 쓰여진 한 여자의 이야기


책 소개가 참 재미있다.


「타임」 선정 1970년대를 지배한 도서 TOP10, 전세계에서 2700만 부가 판매된 전설의 베스트셀러, 한국어판 출간 당시 음란성을 이유로 지형(紙型)이 소각되는 수모를 겪었고 그 후로도 <날으는 것이 두렵다> <침대 밑 사나이> <꿈의 회의로부터의 보고> 등 다양한 한국어(해적)판이 출간된 문제작. 


네 번의 결혼과 거침없는 성적 상상 등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고스란히 담긴 소설, 작가 에리카 종을 페미니즘의 아이콘으로 만들고 가족과 의절하게 한, 그러나 이제는 미국 펭귄 출판사에서 40주년 기념 에디션을 제작하는 명실상부한 고전. 다양한 수식어마저 뜨거운 에리카 종의 소설 <비행공포>의 최초 한국어판이 도서출판 비채에서 출간되었다.


'여성은 얼마나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라는 거대한 질문에 온몸으로 답한 주인공 이사도라의 '성적 모험담'은 40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당혹스럽고 생동감 넘친다. 2013년 올해로 한국 생활 24년을 맞은 서울여대 스티븐 캐프너 교수가 작품 해설을 맡았다.


출판사의 밑줄 긋기 ▶ http://www.aladin.co.kr/shop/common/wbook_talktalk.aspx?ISBN=1185014373&CommunityType=Underline



이 책, 완전 사랑함.

번역도 정말 매끄럽게 잘 되었다.

달리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수작이다- 라는 정도의 말밖에는.

아마 내가 여자라서 더 많이 공감하고 재밌게 느꼈을 것 같긴 하다.

에리카 종의 통찰이 몇 십 년이 지난 나에게도 참으로 날카롭게 다가온다.


페미니즘을 소설로 읽기.

아주 재밌는 소설로 읽기.

이런 느낌이랄까 :)


줄거리로만 이 소설을 설명하자면 한없이 빈약해진다.

이 소설은 어떠한 이야기의 흐름에 그 방점이 맞추어진 건 아닌 것 같다. (물론 그 이야기는 굉장히 중요하긴 하다. 한 여성의 자유를 향한 여정이니까.)

어떠한 사건사건들보다는 그 사건 안에서 소설의 주인공인 이사도라가 생각하는 것, 그것이 굉장히 재미있고 의미있다.


너무나도 인상깊은 구절이 많아서

공책에 베껴쓰다가 다 베껴쓰지 못해서 아쉽다.

꼭꼭 씹어서 내것으로 만들어버리고 싶은 책이다.




p.54

... 여자들이 책을 쓰기 전까지 세상에는 오직 한쪽의 이야기만이 존재했는데. 역사를 통틀어 모든 책들은 정액으로 쓰여졌다. 생리혈이 아니고. 스물 한 살이 될 때까지 나는 채털리 부인의 오르가슴을 기준으로 삼으면서 도대체 나는 어디가 잘못된 건가 의문을 품었다. 채털리 부인이 사실은 남자라는 사실을 그 땐 왜 몰랐는지. 채털리 부인은 사실 D.H.로런스였다.

→ 여자의 성(性)도 남자가 이야기한다. 여자들은 남자들이 바라는 성을 기준으로 삼는다. 그 기이한 일. 그것을 아주 재밌게 써냈다. 사랑해요 에리카 종.


p.99

아기를 갖는 것 자체가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남자를 위해 아기를 갖는 건 부당하다. 그들의 이름을 가질 아기를 갖는 것,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당신이 늘 기쁘게 해주어야 할 남자를 위해 아기를 갖는 것,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는 고통을 감수하면서 봉사해야 하는 남자를 위해 날 구속할 아기를 갖는 건 부당하다. 사랑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족쇄다. 가장 아프고 가장 오래가는 족쇄다. 그 족쇄에 나는 영원히 갇힐 것이다. 나 자신의 감정과 내 아기의 인질이 될 것이다.

→ 최근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라는 책을 읽었다. '아내 폭력'에 관한 책이다. 이 책의 이 구절을 읽었던 나와 '아내 폭력'에 관한 책을 읽고 난 다음의 이 구절을 다시 읽게된 나는 다르다. 다른 점을 느낀다. 더 실제적으로 느껴진다. 아기를 향한 사랑이라는 족쇄가 나를 가둔다.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다. 어떠한 부당한 일이 있더라도. 여성은 사회가 부여한 '아내'와 '어머니'라는 역을 감당하려고 한다. '여성'임을 포기하고 '인간'임을 포기하면서까지. 

→ 그리고 또 하나, 내가 낳는 아이가 내 이름을 갖지 못한다. 남자의 이름을 가진다. 나는 아기를 낳지만 아기는 나의 소유가 되지 않는다. 아이는 나의 이름을 갖지 않는다. 모든 고통을 감내하며 10달간 보듬고 조심하고 절제하고, 마지막에는 출산의 고통을 오롯이 떠안지만 아기는 나의 이름을 갖지 않는다. 그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재우고 돌보더라도 아기는 나의 이름을 갖지 않는다. 아이에게 나는 이방인이다. 아이에게 어머니는 이방인이다. 친(親)가가 아닌 외(外)가이다. 


p.143

오래전 트위스트가 유행했을 때 나는 그 춤을 제대로 추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신경 쓸 게 뭐가 있는가? 사교댄스라는 것은, 사교생활의 모든 것이 그렇듯, 뻔뻔함이 전부였다. 그때부터 나는 '춤 잘 추는 사람'이 되었다. 적어도 춤을 즐기는 사람이 되었다. 춤은 섹스와도 같았다. 리듬과 땀이 전부였다.

→ 춤에 대한 재밌는 관점. 아 매력적이야.


p.170

나는 계속 그의 ---를 빨았지만 그의 ---는 단단해졌다가 이내 축 늘어졌다.

"별로 하고 싶지 않네."

"왜요?"

"잘 모르겠어. 왠지 그러고 싶지가 않아요."

에이드리언은 그 자신이 사랑받기를 원했다. 그의 노란 머리카락 때문도 아니고 그의 분홍색 페니스 때문도 아닌 오직 그 자신의 모습으로. 그의 그런 생각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는 섹스머신이 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 인상적인 에이드리언. 섹스에 환장하지 않는 에이드리언. 이사도라에게 자유를 향해 떠나도록 손을 내밀어준 에이드리언. 


pp.174-174

"가끔 이런 경우가 있었어요?"

"전혀 없었어요. 돌팔이 의사 아가씨, 더 심문당하고 싶지 않아요. 정말 이상하네. 이런 적 없었는데. 단지 당신의 멋진 엉덩이에 완전이 넋이 나가서 지금은 섹스하고 싶지 않은 것뿐이야."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모욕은 드러누운 ---. 이성간의 전쟁의 최종 병기는 축 늘어진 ---. 적진의 깃발은 불완전한 발기. 종말의 상징은 자폭하는 핵탄두 ---. 그것이야말로 결코 바로잡을 수 없는 불평등이다. 남자가 ---라고 불리는 근사하고 매력적인 물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여자가 전천후 xx를 갖고 있다는 사실. 비바람도 진눈깨비도 밤의 어둠도 그것을 무너뜨릴 수는 없다. 그것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고 언제나 준비되어 있다. 생각해보면 xx는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가. 그러고 보면 남자들이 여자들을 증오하는 것도 당연하다. 남자들이 여자의 불완전함에 관한 신화를 지어내는 것도 당연하다.

"나는 핀에 박히는 건 거부하겠어."

'핀에 박힌다'는 말이 나에게 무얼 연상시키는지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에이드리언이 말했다.

"나는 분류되기를 거부할 거야. 당신이 자리에 앉아 나에 관한 글을 쓴다고 해도 당신은 내가 영웅인지, 영웅이 아닌지, 개자식인지 성인인지 알 수 없을걸. 당신은 도저히 날 분류할 수 없을걸."

바로 그 순간, 나는 미친 듯이 그와 사랑에 빠졌다. 그의 축 늘어진 ---는 딱딱한 ---가 결코 닿을 수 없었던 곳에 닿아 있었다.

→ 내가 이 번역을 사랑하는 이유. 반말과 존댓말이 자연스레 오간다. 아주 귀여운 정도로.

가끔 그런 번역이 존재한다. 남자는 이유없이 반말을 하고 여자는 당연한 듯이 존댓말을 한다. 서로가 동등한 관계인데도 불구하고.

굉장히 오래 전에 산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이 있었다. 읽지 않은 채로 꽤 오래 갖고 있었다.

페미니즘을 접하게 된 뒤로 이 책이 읽고 싶지 않아졌다. 뻔한 내용일테지. 그래도 버리기 전 한 번 스르륵 훑어 보았다.

그리고 내 눈에 띄는 '아내-남편'의 대화. 그리고 그 번역된 말투. 

남편은 시종일관 '나는 그랬소 저랬소. 뭐뭐 했으면 좋겠소.' 여자는 늘 '그래요. 저래요. 이래저래 해요.'

역겹다.

깨끗한 그 상태로 그 책은 버려졌다. 

→ 여자들만이 갖고 있는 전천후 xx. 왠지 웃음이 나온다. 그냥 미소가 지어진다. 전천후 xx라니. 그런 식으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억울하다는 생각은 했지. '바기나 덴타타 (이빨 달린 질)'가 정말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나 하고. 이렇게 유쾌한 통찰이라니. 읽는 내내 미소를 감출 수가 없었다. 사랑하는 소설. 완벽한 xx를 갖고 있는 나. 언제나 그 자리에 있고 언제나 준비되어 있는 xx. 아, 정말 유쾌하다. 


pp.228-229

"무슨 생각해?"

그가 물었다.

"제대로 했다는 생각."

베넷에게도 언젠가 했던 말이었고, 지금보다는 그때가 훨씬 진실에 가까웠다.

"당신은 거짓말쟁이에 위선자야. 왜 거짓말을 하지? 내가 제대로 못했다는 거 나도 알고 있는데. 이것보단 훨씬 더 잘할 수 있어."

그의 솔직함이 당황스러웠다.

"맞아. 솔직히 시원치 않았어."

"훨씬 낫군. 당신은 왜 항상 빌어먹을 사회복지사가 되려 하지? 나의 에고를 지켜주려고?"

그는 에고를 '에그-오'로 발음했다.

나는 잠시 생각해보았다. 도대체 내가 뭘 하고 있는 걸까. 나는 늘 남자는 그런 식으로 대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이 산산이 부서지거나 미쳐버릴 거라고 생각했다. 또 한 명의 남자를 미치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남자들의 에고는 너무 섬세해서 항상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던 것 같아."

"나의 에고는 그렇게 연약하지 않아. 제대로 못했다는 얘길 들어도 괜찮다고. 그게 엄연한 사실일 땐 더더욱."

"당신 같은 남자는 처음이라 그랬나봐."

그가 환하게 웃었다.

"당연히 처음이겠지. 아마 앞으로도 못 볼걸. 내가 영웅이 아니라고 말했지? 난 당신을 구원할 남자도 아니고 백마를 태워 멀리 데려갈 남자도 아니야."

→ 여기서도 이제 둘은 반말을 한다. 친밀감의 표현. 적절한 번역. 일방적으로 반말을 하지도 않는다. 이진 번역가님. 감사합니다. 

→ 남자들의 섬세한 에고. 여자들은 사회복지사가 되곤 한다. 남자들은 어떨 지 모르겠지만 여자들은 이 대목에 꽤나 공감할듯.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회적 가르침이 있었던 것 같다. 특히나 성에 대해선. 여자는 성에 대해 무지해야 하고 남자의 에고를 살려주기 위하여 만족한 척 해야 하지. 아 사이다.


pp.239-241

... 그러나 나의 마음은 온갖 모순으로 출렁거렸다. 내가 느끼는 이 모든 모순적 감정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때로는 대담해져서 지상에서의 짧은 삶을 사는 동안 내게 주어지는 모든 쾌락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행복한 쾌락주의자가 되어서는 안 되는가? 그게 뭐가 잘못인가? 역사상 삶으로부터 (그리고 남자들로부터) 가장 많은 걸 얻어낸 여자들은 결국 가장많은 걸 요구한 여자들이었다. 고귀하고 매력 있는 여자처럼 행동하면 남자들도 고귀하고 매력 있는 여자로 대접하고, 발닦개가 되기를 거부하면 그 누구도 밟지 않는다. 비굴한 여자는 짓밟히고 여왕처럼 구는 여자는 여왕 대접을 받는다. 그러나 그런 대범함이 잦아들고 나면 이내 쓸쓸함과 절망감에 휩싸였고 결국 두 남자 모두를 잃고 혼자 남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였으며, 베넷에게 미안했고 정조를 지키지 못한 나 자신을 비난하면서 내가 저지른 모든행동을 경멸하게 되었다. 그럴 때면 베넷에게 달려가 용서해달라고 빌고 그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앉아 당장 그의 아이를 열둘 낳겠다고 말하고 (그와 나의 결속을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그가 나의 안전을 보장해주기만 한다면 노예처럼 무슨 짓이든 하겠다고 약속하고 싶어졌다. 고분고분하고 역겨울 정도로 달콤한 여자가 되겠노라고, 소위 '여성성'이라는 거짓말로 이 세상에 통용되고 있는 모든 것들의 결정체가 되겠노라고 말하고 싶어졌다.

그러나 그 어느 쪽도 말이 되지 않았고 나 역시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지배하는 것도 지배당하는 것도, 못된 여자도 노예도, 둘 다 덫이었다. 그 두 가지 모두 결국은 내가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외로움으로 나를 이끌 뿐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스스로를 증오하면 자신을 증오하는 나를 또다시 증오하게 되었다. 그리고 절망했다.

→ 


p.242

문득 나는 가방을 챙겨 두 사람 모두에게서 떠나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둘 중 한 명을 선택하는 대신 그들 두 사람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야 하는 건 아닐까? 두 사람에게서 벗어나 내가 나를 보호해야 하는 건 아닐까? 이 남자에서 달아나 저 남자에게로 가는 식이 아니라 한 번이라도 혼자 힘으로 살아 보는 것. 그게 왜 이토록 두려울까?

→ 


p.250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당신은 원하는 걸 뭐든지 가질 수 있는데 그걸 모르고 있단 거야. 온 세상을 손에 쥘 수 있는 데도 그걸 몰라. 나와 함께 가면 베넷이 별로 그립지 않을걸. 나하고 여행을 떠나는 거야. 나는 유럽을 발견하고 당신은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p.252-253

에이드리언이 웃으며 내 엉덩이를 애무했다. 그것만큼은 난해하지 않았다. 그것만큼은 '전체대상'이었다. 1과 2분의 1이었다. 에이드리언과 함께 있을 때면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내 엉덩이가 만족스러웠다. 제발 남자들이 알았으면. 여자들은 하나같이 자기가 못생겼다고 생각한다. 심지어는 예쁜 여자들조차도. 이 사실을 이해하고 있는 남자는 돈 조반니보다 더 많은 여자들과 섹스할 수 있을 것이다. 여자들은 모두 자기 xx가 못생겼다고 생각한다. 엉덩이는 너무 크고 가슴은 너무 작고 허벅다리와 발목은 너무 굵다고 생각한다. 모델이나 배우들도, 너무 예뻐서 아무 걱정이 없을 것 같은 여자도 항상 걱정한다.

"당신의 통통한 엉덩이를 사랑해. 이런 통통한 엉덩이를 만들기 위해 당신이 먹은 모든 음식들도. 냠냠!"

그가 내 엉덩이를 깨물었다. 이런 식인종 같으니라고!


p.255

"이대로 떠나버리면 그를 잃을 거야."

"그럼 베넷은 당신이 가질 가치가 없는 사람이야."

"그게 무슨 뜻이야?"

"그렇잖아. 만약 베넷이 떠난다면 베넷은 어차피 당신 남자가 아니었어. 만약 당신을 다시 받아주면, 그건 새로운 시작이 되겠지. 더이상은 서로에게 아첨할 필요가 없겠지. 죄책감으로 서로를 조종하려 하지도 않을 거고. 어쨌든 당신은 하나도 잃을 게 없어. 더구나 그동안 우리는 아주 멋진 시간을 갖게 될 거야."


p.261

"응. 하지만 난 당신이 날 따분하게 하는 게 좋아. 다른 사람이 날 재미있게 해줄 때보다 더 재미있거든."

"우리가 나누는 대화의 흐름이 좋아. 당신을 감동시키려고 노력하지 않고 내가 생각하는 걸 뭐든 다 말할 수 있으니까."


p.269

"헛소리하고 있네. 당신은 사랑을 말하지만 사실 당신이 말하는 건 안전이야. 그런데 사실 이 세상에 안전이란 존재하지 않아. 만약 당신이 안전한 남편과 함께 안전한 집으로 돌아간다 해도 당신 남편은 이튿날 심장마비로 죽을 수도 있고 다른 여자하고 눈이 맞을 수도 있고 당신을 사랑하지 않게 될 수도 있어. 우리가 미래를 알 수 있나? 운명을 예측할 수 있나? 당신이 생각하는 안전이 정말 안전일까? 확실한 건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당신한테 이런 기회가 없을 거란 거야. 죽음만이 확실하지. 어제 당신이 말한 것처럼."


pp.276-277

정신분석이니 자기분석이니 그들이 했던 얘기들은 순 헛소리였다. 그들의 삶에서 진정으로 의미 있는 사건에 직면했을 때 그들은 그 사실을 얘기조차 할 수 없었다. 타인의 삶은 얼마든지 분석할 수 있으리라. 누군가의 동성애적 욕망, 누군가의 오이디푸스적 삼각관계, 누군가의 간통은 분석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정작 그들 자신의 경험 앞에선 모두 할 말을 잃었다.


p.319

"가장 나쁜 건 당신이 항상 당신의 삶을 평범하게 만들려고 애쓴다는 거예요. 정신분석을 받는다고 해도 당신의 삶은 결코 단순해지지 않아요. 왜 그렇게 되기를 바라죠? ...(후략)"


p.343

나는 자존심이 있는 여자라면 뒤도 안 보고 달아났을 남자를 만났고 온갖 기이한 성향 속에서 뭔가 사랑스러운 걸 발견했으며 광기 속에서 엄청나게 매력적인 무언가를 발견했다. 에이드리언은 그 대목을 재미있어했다. 물론 그는 내가 만났던 정신병자 집단에서 그 자신을 제외시켰다. 그 자신도 어떤 패턴의 일부일 거라는 생각을 그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당신이 만난 남자들 중에 분류할 수 없는 남자는 오직 나 한 사람뿐이군!"


p.401

찰리와 그의 하버드 장애물. 그는 올 C학점으로 대학을 졸업했지만 변변치 않은 바너드 대학에서 최우수 학생 클럽에 속해 있었던 나보다 자기가 훨씬 우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하버드에서 자신이 정제되었다고 생각했다. 그의 모든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하버드 출신이었으니까.


pp.437-438

나는 나 자신에게 물었다. 어쩌자고 이곳에 와서 쉬겠다는 생각을 했냐고. 나는 다시 떠나고 싶어졌다. 문득 내가 인간 탁구공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으로부터 떠나려고 남자를 찾고 남자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가족을 찾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 다시 떠나고 싶고 떠나는 순간 다시 집에 돌아오고 싶다. 도대체 그걸 뭐라고 불러야 하나. 존재론적 딜레마? 여성 억압? 인간의 조건? 전에도 견디기 힘들었지만 지금도 견디기 힘들다.


p.488

FEMMES! LIBERONS-NOUS! (여성들이여! 스스로를 해방시켜라!)


p.490

우리는 다시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첫 번째 단계에 대한 그리움으로 이루어진 두 번째 단계의 사랑이다. 두 번째 단계의 사랑은 절망적으로 사랑에서 멀어져가고 있음을 느끼고 그 사랑을 잃는다는 생각을 견딜 수 없을 때 시작된다.

우리는 더 이상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알지 못한다. 우리는 어느덧 우리의 연기와 하나가 된다.


p.502

그러나 나는 에이드리언의 아이가 아니었다. 그에겐 나를 구원할 의무가 없었다. 나는 이제 그 누구의 아기도 아니었다. 해방된 여자. 완전히 자유로운 여자. 그건 내 평생 겪은 그 어떤 경험보다도 두려웠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견디어야 할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가 날 구원해주리라는 기대를 버린 순간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그의 아이가 아니었다.


pp.507-509

그러나 이제 나는 혼자 있고 싶었다. 만약 누군가가 내 상황을 잘못 해석한다면 나는 야생 짐승이 되어 반격할 것이다. 심지어는 심리학을 공부했고 남다른 통찰력을 지닌 베넷조차도, 내가 남자들에게 끊임없이 '접근 가능' 메시지를 보내기 때문에 남자들이 날 유혹하려 하는 거라고 말했다. 내가 옷을 너무 섹시하게 입어서. 혹은 머리가 너무 단정치 못해서. 아니면 그 무엇이라도. 한마디로 말해서 그런 공격을 당해도 싸다는 것이었다. 그건 이성간의 전쟁과 관한 오래된 독설이었고 가면을 쓴 구시대의 언어였다. 강간이라는 건 없다. 너희 여자들이 원한 것이다. 너희 여자들이.


왜 여자가 남자를 거부하면, 진심으로 마음을 다해 거절하면, 남자는 여자가 예의상 그러는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남자가 '노'라고 말하면 그것은 노이다. 여자가 노라고 말하면 그것은 '예스'이거나 적어도 '아마도'이다. 그런 걸 두고 하는 농담도 있지 않은가. 조금씩, 조금씩, 여자들은 여자에 대한 그런 편견들을 믿기 시작한다. 결국 그런 편견의 그늘에서 수 세기동안 살아온 여자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그 어떤 일에도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남자들은, 물론 여자들의 그러한 우유부단함을 조롱하고 그 모든 걸 생물학적인 문제, 호르몬 문제, 생리전증후군 탓으로 돌리고 그들의 약점을 공격한다.


p.539

'여성들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늘 남성들의 여성관에 맞추려 애쓰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 D.H.로런스


p.569

나는 내 몸을 내려다보았다. 똑같았다.. 허벅지가 만든 분홍빛 V. 곱실거리는 음모의 삼각형, 마치 헤밍웨이 소설의 주인공처럼 물 위에 낚싯줄을 드리우고 있는 생리대 끈. 하얀 배, 반쯤 물 위에 내놓은 젖가슴. 뜨거운 물에 장밋빛이 된 젖꼭지. 멋진 몸. 내 몸. 내가 갖기로 한 몸.

나는 나 자신을 끌어안았다. 사라진 건 바로 내 두려움이었다. 지난 29년 동안 가슴속에 넣고 다녔던 차가운 돌들이 사라졌다. 갑자기 사라진 건 아니었다. 어쩌면 영원히 사라진 게 아닐 수도 있었다. 어쨌든 지금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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